from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고통이 없다. 슬플 때 소마를 먹으면 행복해지고, 성적 자유가 보장되고, 모든 물질적 필요가 충족된다. 그런데 이 세계가 디스토피아인 이유는 무엇인가?
고통이 없으면 성장도 없기 때문이다. 좌절을 겪어야 회복력이 생기고, 상실을 경험해야 소중함을 안다. 멋진 신세계의 시민들은 행복하지만 깊이가 없다.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없고, 사랑의 고통을 모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마는 부작용 없는 완벽한 마약이다. 현실이 불편하면 소마를 먹고 '휴가'를 떠난다. 이건 우리가 스마트폰을 쓰는 방식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지루하면 인스타그램을 열고, 불안하면 유튜브를 틀고, 외로우면 틱톡을 본다.
헉슬리가 1932년에 예견한 건 감시를 통한 통제가 아니라 쾌락을 통한 통제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 "사람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기술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소설에서 야만인 존은 멋진 신세계를 거부하고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한다. 질병, 늙음, 고통, 두려움 — 이것들을 포함한 온전한 인간 경험을 선택하겠다는 것.
이건 극단적이지만, 핵심 질문은 유효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편을 제거해야 하는가? 모든 마찰을 없앤 삶이 정말 좋은 삶인가?
1984가 두려움의 디스토피아라면, 멋진 신세계는 쾌락의 디스토피아다. 닐 포스트먼은 '죽도록 즐기기'에서 헉슬리의 예측이 오웰보다 정확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감시당해서가 아니라 즐겨서 자유를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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