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이방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첫 문장부터 충격적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않는다.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다음 날 여자친구와 해수욕을 간다.
이것은 냉혈한이 아니라 정직함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감정 — 어머니가 죽으면 슬퍼해야 하고, 장례식에서 울어야 하고, 한동안 침울해야 한다 — 을 거부한 것이다. 느끼지 않는 감정을 연기하지 않겠다는 결정.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인 이유는 없다. "태양 때문에"라는 답은 황당하지만, 이것이 카뮈가 말하려는 부조리다. 세상에는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이 있고, 우리는 모든 것에 이유를 붙이려는 습관이 있다.
재판에서 뫼르소를 유죄로 만드는 건 살인 자체가 아니라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회는 행동보다 태도를 심판한다.
뫼르소는 세계와 어긋나 있다. 사회가 기대하는 반응을 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다. 현재의 감각 — 태양의 열기, 바다의 촉감, 커피의 맛 — 에만 충실하다.
이런 삶이 자유로운가, 공허한가? 카뮈는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사회의 기대에서 벗어난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n
이방인을 읽으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떠오른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의미는 없다는 뜻이다. 뫼르소는 의미 없는 세계에서 의미를 만들기를 거부한 사람이다. 그것이 자유인지 비극인지는 읽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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