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을 압도한 이유를 허구를 믿는 능력에서 찾는다. 신, 국가, 돈, 법인 — 이것들은 물리적 실체가 없지만 수만 명이 같은 이야기를 믿는 순간 현실이 된다.
이 관점이 흥미로운 건 '진실이냐 거짓이냐'가 아니라 '작동하느냐 마느냐'로 이야기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종교든 자본주의든, 그 이야기가 대규모 협력을 가능하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논리다.
하라리는 농업혁명을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부른다. 수렵채집인은 하루 3-4시간만 일했지만, 농부는 해가 뜨면 밭에 나가 해가 질 때까지 허리를 굽혀야 했다. 밀이 인간을 길들인 거지,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게 아니라는 역설.
그런데 이건 현대에도 반복된다. 스마트폰이 우리 삶을 편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스마트폰에 종속되었을까. 도구를 만들 때마다 우리는 그 도구에 의해 재편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라리는 묻는다 — 역사가 진보했다면, 인간은 더 행복해졌는가? 중세 농부와 현대 직장인 중 누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을까. 물질적 조건은 비교할 수 없이 나아졌지만, 행복은 기대와 현실의 차이로 결정된다.
이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진보가 정말 행복과 연결되어 있는지, 아니면 그저 다른 종류의 불만족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건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이론이다. 언어가 세계를 구성한다는 생각과, 허구가 현실을 구성한다는 하라리의 주장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물리적 사실이 아니라 공유된 이야기의 총합이다.
Share your reflections on this piece
Sign in to join the conversation
Sign InNo comments yet. Start the conversation.
Recommendations based on shared topics and recent reading